[작곡가의 음악 리뷰] 잔나비 (JANNABI) - 꿈과 책과 힘과 벽 (Dreams, Books, Power and Walls) / 가사 / 해석 / 편곡 / 여러가지 생각들
by HYUNO2024. 1. 21.
안녕하세요 리뷰하는 작곡가 HYUNO입니다.
음악을 만들다 보면 필연적으로 다른 이들의 작품을 듣게 되고, 어떻게 표현했는지, 어떤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자연스레 느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 시선이 아티스트의 시선과 완전히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순 없겠지만, 제 시선으로 이들의 작품을 리뷰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곡은 이름처럼 멜론의 전설이 되어버린, 2019년 발매된 정규 2집 앨범 "전설"의 12번 수록곡 "꿈과 책과 힘과 벽"입니다.
흔히들 음악은 "감성적인"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트랙 메이커, 탑라이너, 작사가 등으로 나누어 분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각자의 파트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할 뿐, 곡에 감성을 넣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안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잔나비"의 음악을 리뷰하며 '아티스트란 이래야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이런 게 밴드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설득력이 있으면 많은 사랑을 받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참 부러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아티스트의 길은 좁지만, 자신만의 예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큰 가치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음악과 함께 들으시면 더 좋습니다.
가사
해가 뜨고 다시 지는 것에 연연하였던 나의 작은방 텅 빈 마음 노랠 불러봤자 누군가에겐 소음일 테니 꼭 다문 입 그 새로 삐져나온 보잘것없는 나의 한숨에 나 들으라고 내쉰 숨이 더냐 아버지 내게 물으시고 제 발 저려 난 답할 수 없었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갈 거야
꿈과 책과 힘과 벽 사이를 눈치 보기에 바쁜 나날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무책임한 격언 따위에 저 바다를 호령하는 거야 어처구니없던 나의 어린 꿈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되던 날 두드러기처럼 돋은 심술이 끝내 그 이름 더럽히고 말았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간대두 멈춰 선 남겨진 날 보면 어떤 맘이 들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잘도 버티는 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
[가사 이야기]
해가 뜨고 다시 지는 것에 연연하였던 나의 작은 방 텅 빈 마음 노랠 불러봤자 누군가에겐 소음일 테니
음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목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악기들은 표현할 수 없는 가사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인데,
사실 이 가사라는 게 '멜로디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텅 빈 마음을 노래한다는 건 나의 공허함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나에게는 이야기인 이것이 누군가에게 소음이라는 건 조금 차갑게 들리겠지만 나의 이야기가 아무도 관심 없는 그저 소음에 불과할 뿐인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꼭 다문 입 그 새로 삐져나온 보잘것없는 나의 한숨에 나 들으라고 내쉰 숨이더냐 아버지 내게 물으시고 제 발 저려 난 답할 수 없었네
"꼭 다문 입 그 새로 삐져나온 한숨" 이 표현이 적나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답답하면 자연스레 표정이 굳게 되고, 그 상태로 내쉰 숨은 굳은 표정에서 꼭 다문 입 사이로 삐져나온 힘없는 한숨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입 사이로 삐져나왔다'는 표현은 마치 투정 부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아버지가 느끼기에도 그 한숨은 투정에 가까운 한숨이었나 봅니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갈 거야
'어른'이라는 단어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저에게는 '책임과 무게를 온전히 버텨야 하는 존재'라고 느껴집니다.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보낸 순간과 시간에 그 모든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가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모든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니, 그 무게는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죠 그게 자의로 들게 된 무게이든, 타의로 들게된 무게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지는 짐은 그것을 처음 들게된 젊은 청춘에게 꽤나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꿈과 책과 힘과 벽 사이를 눈치 보기에 바쁜 나날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무책임한 격언 따위에
예전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우리는 내일을 알 수 없기에 불안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내일은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라고 믿고 어둠을 걷는 청춘에게 '꿈'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도, 그를 위해 내야 되는 힘도, 그를 위해 넘어야 하는 벽도 이 청춘에게는 조금 버겁고, 무겁게 느껴졌나 봅니다.
어쩌면 '꿈을 꾸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눈치를 보는 이유가 '꿈을 꼭 꾸어야 하나' 하는 물음을 가지고 있어서 일 수도 있습니다.
답은 이야기를 쓴 사람만 알고 있겠죠.
저 바다를 호령하는 거야 어처구니없던 나의 어린 꿈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되던 날 두드러기처럼 돋은 심술이 끝내 그 이름 더럽히고 말았네
누구에게나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내가 가질 수 없는 꿈인가' 의문을 가지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고 판단하게 되는 순간들도 있죠.
꿈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던 날 느끼게 된 절망감이 결국 꿈이라는 이름을 더럽힌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의 신 포도처럼요.
더는 못 간대두 멈춰 선 남겨진 날 보면 어떤 맘이 들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잘도 버티는 넌
더 나아갈 수 없다고, 어둠 속 내딛던 발걸음을 멈춘 이에게
아니, 그 이가 나라면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
본인에게 실망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런 불안감에 휩싸여 하루가 더 무겁게, 무섭게 느껴지는 것 이겠죠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
무섭지만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있어요.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고, 하루만큼 더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니
어릴 적 본 어른들의 무덤덤한 눈을 조금씩 닮아가야 할 테니..
[편곡 이야기]
잔나비라는 그룹의 특징인지
이 앨범 자체의 색을 그렇게 잡은 건지
세련된 보컬에 신시사이저는 예전에 자주 쓰이던
소스들을 섞어서 사용했어요
기본적으로 밴드 세팅의 악기로 끌고 가되, 화성을 채워주는 신디사이저의 소리들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소리들을 채워주고 있어요. 드럼 소스 자체도 되게 아날로그 느낌이 나죠 정말 사소하게 들어가 있는 느낌?
사실 드럼은 곡 전체의 빌드업을 담당하고 있을만큼 중요한 포지션인데 말이죠... 오히려 이 곡의 빌드업은 신디사이저나 보컬이 끌고가는 느낌이 드네요
끝 부분에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를 합창으로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곡의 가사를 해석해 보니 왠지 아이들의 목소리와 어른(보컬)의 목소리를 섞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곡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
전 글에서 적었듯 이 앨범은 '언젠가는 다 사라져 전설로 남을 청춘의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요
이렇게 청춘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곡이 있을까 싶어요 처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춘들에게 '꿈'이란 무지개와 같아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계속해서 따라가게 되는.. 그러다 어느 순간 포기를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는..
가끔은 주위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실망할 것 같기도 한,
아직 가치관이 채 잡히지 않아 본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조차 잘 모르겠는 '불완전한 존재' 그 자체거든요.